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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학과 권영달 선배님(한성개발공사 대표이사) 관련 기사

등록일 2026-05-15 작성자 배문주 조회수 39

조경에 대한 열정이 CEO 자리에 앉게 하다

[인터뷰]  권영달 한성개발공사 대표이사

학교에서 배운 실력으로는 실무 적용에 한계

이직 위해 면접을 본 기업에서 만난 직장 상사

담대하라. 그리고 성실하고 정직하면 신뢰는 쌓인다

 

라펜트 ㅣ 기사입력 2026-05-13

 

“1993 한성개발공사 공채 1기로 입사했지만 엔지니어링이 하는 사인지도 모르고

조경부서직을 채용한다기에 들어왔다. 조경부서가 따로 있지 않아 도시계부에 배치됐으나 조경보다는 허드렛일만 하는 많았다. 그래서 나는 잘못 들어왔구나... 라고 생각했다.”

 

지난 5 1일부로 경남 김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엔지니어링 기업한성개발공사는 권영달 전무를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오직 조경을 하고 싶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시작해 33 만에 경부서에서 기업을 대표하는 CEO 탄생한 것이다. 한성개발공사 또한 1989 창립 37 만의 일이기도 하다.

 

조경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권영달 대표를 만나 오랫동안 꺼내지 못했던 그의 젊은 시절로 타임 슬립(Time Slip) 본다.

 

 

 조 아니면 무할 이유 없다

 

젊음이라는 단어에는 반드시 치기(稚氣)’라는 명사가 함께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어리고 유 치한 기분이나 감정따위로 순하게 정리하고 있지만 젊음은 치기이다라는 수식어가 맞을 것이다.

 

권영달 대표가 93년도에 한성개발공사 공채 1기로 입사했고, 엔지니어링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신은 조경 일을 하게 것이라는 확신 속에 나름대로 업무에 대한 분석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배치된 도시계획부에서는 조경 담당자가 자신뿐이었다는 사실은 다소 괴리감 또한 들게 했다. 소속감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어지는 일들은 허드렛 뿐이었으니 대표는 현타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정말이지 때문에 (조경직을) 뽑았는지도 모르겠더라. 도시계획부에는 혼자 조경팀(?) 아니 팀도 아니니 조경 담당이었다. 학교 다닐 회사에 들어가면 디자인도 하고 알았지만, 전혀 상관이 없었다. 주는 업무도 도면에 색칠하는 이런 것들이 대부분이었. 내가 잘못 들어왔구나 생각했었다.”

 

대표는 잘못 들어왔구나라는 판단을 내림과 동시에 이직을 생각했다.

사실 대표가 입사한 시기인 1993년경에는 우리나라에 조경이 70년대 초반에 들어 이후 불과 20 정도밖에 됐다. 시기는 산업이 자리를 잡기 위한 성숙기는커녕 다소 어중간한 시기로 기업들이 조경부서를 두고 있지 않거나, 이제 만들어지는 시기라 조경부서가 처음 생긴 한성개발공사로서도 대표를 이끌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보다 열정이었다

결국 이직을 생각한 대표는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당시 부산에 유일하게 있던 설계사무실 A사에 전화를 걸었다.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OO회사에서 지금 다니고 있는데 면접을 보고 라고 했고. 당시 A 소장이 면접을 보자며 방문하라는 답을 했다.

 

A사에 방문한 대표는 면접을 보면서 탄식을 했다. 당시 A사에서 내건 조건이 급여 40 (당시 삼성전자 대졸 신입 기본급 65 , 800% 상여금) 야근은 수시로 있고, 택시비 , 밥값도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로 악조건 자체였다.

 

그런데 진짜 악조건은 다음 대답에서 나왔다.

 

당시 A 소장이 면접을 마치고는 내게 너희 회사 이사님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라고 말했 . 그래서 내가 이사님이 여기로 오시는거냐?’라며 물었더니 A사에 하도급을 있어 논의차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회사와 그런 관계였다는 것도 모르고 면접을 것이다.”

 

대표도 나중에 알게 일이지만, A 소장은 이미 한성개발공사 이사에게 전화로 직원 면접을 보러 오겠다는데 봐도 되느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다음 대표는 이사를 찾아가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고 한다.

꿈을 이끌어 소신

 화가 있을 법했던 상황에

대표는 모든 책임을 려했다. 질책은 당연히 있을 알았다. 그런데 이사의 응은 오히려 권 대표를 놀라 했다.

이사는 어떤 일이 들고, 무슨 이유로 이직을 각했는지에 대해 듣고 싶어 했다. 행위에 대해, 또는 배신감에 다가오는 궁금증이 니라는 정도는 파악할 있었다.

 

이사님이 그렇게 물어와 나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

경이 하고 싶어서 왔는데 시계획만 하고 있어서 도무 이렇게 해서는 꿈을 펼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더니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경에 관한 일이 어졌고, 없으면 만들어서라 정도로 챙겨주었다.”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언한 소신이 결국 꿈을 끄집어내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입사 1 정도가 지나면서 회사에 설계부서로의 이동을 요청하게 된다.

 

당시 회사는 택지개발 사업들이 많아지면서 택지개발과 연관된 조경일들이 많았다. 공원도 있다 보니 설계부서로 이동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공원설계를 내가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외주를 주던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이 가능한 부분이니 회사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건이었다. 그렇게 설계부서로 발령을 받아 이동할 있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조경설계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됐다.

 

일에 미쳤으면 끝을 보라

 

간절하게 바라던 조경설계를 시작했으나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실무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았 . 그야말로 사면초가(楚歌) 아닐 없었다. 실무경험이 없기 때문에 일단 서울에 선배들에게 도움을 받기로 하고 관련 자료들을 요청해 받았다.

 

어떻게 수량 산출을 하는지. 내역은 어떻게 만들고, 계획과 시방서 도면 구성에서부터 모든 것들을 새롭게 공부해 나갔다. 어떻게든 흉내라도 내려고 했다. 디자인 평면도도 그려보지만 어쨌든 혼자 하기는 힘든 작업이었다.

 

당시 토목부에 과장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내역은 내가 테니 나보고 수량 산출을 라고 했다. 혼자서는 힘든 작업이라 동아대를 졸업한 여직원을 채용해 둘이서 일을 해나갔 . 1 동안 그렇게 진행하니까 구성에 대해 이해하게 되더라.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친 짓이 었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끝을 것이다.”

 

복을 위한 선택 달음

 

자신에게 주어졌던 산을 넘고나니 허기짐이 했다. 분명한 한계를 느낀 프로젝트였던 자신을 누군가 이끌어 주고, 일을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끓어 올랐다.

 

그런 가운데 부산에서 당시 제일 건설사로 알려졌던 OO종합건설이 OO기술단을 흡수합병 하면서 조경부를 신설한다는 것과 과장직을 뽑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표는 조바심이

났다. 자신이 들어가고 싶지만, 현재 주임의 위치이고, 무엇보다 경력을 어디 내놓을 정도는 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정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전화를 했고, 방문해 보라고 해서 택지개발 했던 공원 청사진 등을 챙겨 면접을 보러 갔다. 회사가 정말 좋았다. 부산 최고의 건설사답게 건물도 좋고, 안에 들어가니 사무실 환경도 좋았다. 조경부에 벌써 10 명이 일을 하고 있어 성된 조직을 보니 흥분이 됐다. 같은 전공을 사람들하고 일을 하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뿐 이었다.”

 

면접을 주가 지나도 연락은 없었다. 포기할 즈음 전화가 울렸고 합류하라는 소식을 받게 됐다.

 

진짜 당시에는 정말 행복했다. 후일 담이지만 회사에 새롭게 서울에서 합류한 기술사가 말하길 전화를 해서 자신을 소개하고 면접을 보고 싶다는 패기를 보여준 것을 높게 평가했다 라고 하더라. 그렇게 들어가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됐다.”

 

당시 부산에서 가장 컸던 OO종합건설은 1997 IMF 여파로 1998 부도를 맞았고, 조경 직원들 또한 각자의 길을 찾아야 했다. 근무할 당시 상사였던 장대수 부장은 직원들에게 술자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가르치며 배움을 놓지 것을 주문하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당시 자신의 상사들이 디자인하는 것과 안에 구현되는 표현들을 보면서 표는 감탄과 동시에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한다. 그야말로 2 동안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는 맞을 정도다.

 

 

 

직원처럼 일하지 사장처럼 일해라

 

친구의 요청으로 기술사사무소에서 2 정도 일을 돕고 있을 때였다.

한성개발공사 당시 대표이사였던 김창호 회장이 조경부서를 이끌어 달라는 연락이 왔다. 고민은 했지만, 그리 길지 않았다.

 

한성개발공사에 다시 합류한 대표의 행보는 막힘이 없었고, 회사 승진 또한 거칠 없이 순풍에 전진했다.

 

40 초반에 전무를 13년을 보냈다. 그리고 2026 5 1 CEO 자리에 앉았다.

 

입사 1년도 신입이 이직을 꿈꿀 업체 소장에게 면접을 허용했던 김창호 회장의 범함. 그런 회장에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며 꿈을 꾸기 시작했던 권영달 사원.

대표가 하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지켜봐 김창호 회장과의 계속된 인연은 (信賴)’라는 단어 외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대표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직원처럼 일하지 마라. 내가 주인인 것처럼 일하고, 내가 사장인 것처럼 일해라. 기술력도 요하지만 성품도 좋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실하고 정직해야 한다. 우리가 회사를 다니다 보면 여러 가지 유혹이 생길 있다. 정직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문제로 돌아온다. 자기 관리를 그래서 해야 하는 것이다. 회사에 입사한 나는 꾸준히 공부를 했다. 대학원가서 석사, 박사를 마치며 성장했고, 회사 덕분에 많은 발전을 있었다. 회장님께서는 내가 하는 것에 대해 NO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말을 했다. 회장님께서는 또한 받아주었다. 정직하게 대해 것에 신뢰가 쌓인 아닌가 생각한다.”

 

대구대학교 조경학과 2 졸업생으로 오직 조경을 하겠다고 미친 듯이 달려 권영달 대표는 늦은 나이에 ·박사를 거쳤음에도 계속해서 배워야 하고, 일이 많다며 초심을 잡는다.

 

사람들은 생각할 있다. “기업 대표이사 자리에 앉았으면 가질 있나?”라고. 하지만 일에는 자리에 맞는 책임이 주어진다. 안에는 기업발전이라는 막중함이 담겨있는 만큼

대표가 마음속에 품은 그림은 어쩌면 끝나지 않은 드라마일 있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 .